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화단 운동 (문단 편집) === 연합군의 베이징 함락과 보복 === || [[파일:attachment/의화단 운동/asdwqeqweewqe.jpg|width=100%]] || || 베이징 [[자금성]]에 입성하는 연합군 || || [[파일:external/www.nuttyhistory.com/963291_orig.jpg|width=100%]] || || 의화단과 연합군의 전투를 그린 일러스트 || '''결국 [[선전포고]]한지 2개월도 채 넘기기 전인 8월 14일에 [[베이징]]은 연합군에게 함락당했다'''([[제2차 아편전쟁]] 이후 두 번째). 서태후와 광서제는 간신히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광서제]]가 총애한 [[후궁]]인 진비 타타라씨가 죽었는데 전후 조정의 공식 입장은 '후궁까지 챙기기 어려운 다급한 상황에서 정절을 위협받은 진비가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진 것'이었지만 현장에 있었던 태감과 [[궁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무술정변]] 이후 유폐되었던 진비가 [[서태후]] 앞으로 끌려왔을 때 황제가 "피난하지 말고 연합군과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에 격노한 서태후가 태감 최옥귀에게 명령해 진비를 우물에 밀어넣었다. 상황이 다급해서 후궁까지 챙기기 어려웠다는 조정의 입장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 서안 피난길에 대동한 여성 중 진비의 자매이자 광서제의 후궁인 근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서태후는 수도에 남아 강화하려는 광서제를 반강제로 대동하고 8월 15일에 베이징을 빠져나와 [[천춘쉬안]]의 보좌를 받아 서안([[시안(도시)|장안]]=[[시안(도시)|시안]])으로 달아났다. 임자없는 베이징은 혼돈 상태가 되었다. 자국민이 의화단에게 잔혹하게 학살당하는 순간 8개국 연합군도 당연히 눈이 뒤집혔다. 복수심은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당연히 의화단은 궤멸되었다. 영화 <팔국연군>을 보면 의화단 포로들이 [[일본군]]의 손에 일제히 참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의화단이 아닌 수많은 중국인들도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당초에 적지 않은 비의화단 중국인들조차 상금을 탐내고 외국인 학살에 적극 가담했다. 베이징을 점령한 8개국 연합군은 3일간 자유 시간을 가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080460|#]] 그리고 베이징의 [[이화원]] 등 많은 건물들이 약탈당하거나 파괴되었다. {'''경사(京師)의 변(變)'''}. 특히 독일군이 제일 심했다. 왜냐하면 공사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독일 제국]] [[황제]]인 [[빌헬름 2세]]가 크게 분노하여 [[중국]]으로 원정을 떠나는 [[독일 제국군]] 병사들한테 >"옛날 [[훈족]]의 [[아틸라]]가 그랬듯이, 중국을 상대로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를 마음껏 저질러서 중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하라." 라고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다른 국가들도 폭행이나 베이징 시내 거리와 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중국인들을 납치, 강간하는 등의 보복을 행했고 납치당한 중국인들은 강제노역을 하게 되거나 여자들은 강제로 서양인들의 첩이 되었다. 특히 프랑스군은 청나라인의 특징인 [[변발]]된 머리가죽을 뜯는 야만적인 짓거리를 했다. 외인부대라는 책자에 의하면 [[프랑스 외인부대]]도 이 전쟁에 참전하여 의화단 반군을 죽여 역시 [[인간을 사용한 XXX|변발이 붙은 머리가죽을 트로피처럼 가지고 다니거나 부대를 장식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그렇게 장식하다가 현재는 말꼬리로 바꾸었다고 서술하며 말꼬리를 장식한 외인부대 행사 사진을 싣기도 했다. || [[파일:Eight_Nation_Alliance_in_the_Boxer_Rebellion.png|width=100%]] || || 당시 8개 연합국의 병사들을 대표로 차출해 찍은 사진.[* 1900년 6월 10일에 촬영. 여담으로 [[러시아 제국]]은 열강 8개국의 병사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진에서 제외되어 있다.][br]왼쪽부터 [[영국]], [[미국]], [[호주 자치령]], [[인도 제국]](영국)[* [[터번]]을 쓰고 있다.], [[독일 제국]][* [[피켈하우베]]를 쓰고 있다.],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 공화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탈리아 왕국]][* [[베르살리에리]] 부대원이다.], [[일본 제국]]. || 한 가지 흥미로운 일화로 나중에 8개국 연합군이 북경에 입성했을 때 [[베르살리에리]] 연대는 언제나 걷지 않고 뛴다는 관습에 따라 '''구보로''' 입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베르살리에리 나팔수들은 뛰면서 [[나팔]]을 불었다. 이건 <[[북경의 55일]]>에도 구현되어 있다.[[https://youtu.be/Iciz0SXaWjU?t=26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